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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발제문/12

티셔츠 한벌에 5유로, 초저가에 숨은 비밀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5. 30. 05:25

티셔츠 한벌에 5유로, 초저가에 숨은 비밀


베를린 사회과학모임 2012년 5월 27일

박동수


(이 글은 2010년 12월 17일에 Die Zeit 지에 실린 글 “Das Welthemd" [1] 를 번역한 것을 토대로, 조금씩 더하고 추가한 글입니다.)


1.


의류 대기업 H&M은 불과 몇유로에 티셔츠를 판다. 그들은 어떻게 그런 싼 가격에 옷을 팔수 있는걸까? 그 비밀을 파헤쳐보자.


2.


베를린 서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밤색 포르셰 카레라 한대가 지나간다. 그 차가 멈춰선 곳은 한 주차장, "삼"(Sahm)이라는 표지판이 적혀있다. 호리한 몸매의 한 사내가 내려서 회사 건물로 들어간다. 그의 이름은 호르스트 삼 (Horst Sahm), 이 회사의 사장이다. 그는 반평생동안 독일, 홍콩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패션업계 매니저로 일했다.


그가 앉은 탁자위에 놓인 티셔츠 칼라에 새겨진 글씨는 H와 M. 두 글자는 한 왕국의 상징이다. 38개국, 2078개 매장, 7만6천명의 임직원. 스웨덴 의류 대기업 Hennes & Mauritz, 줄여서 H&M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매장을 개설하는 중이다. H&M 옷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럴듯하고 헐값이다". 자켓 한벌에 30유로, 청바지는 20유로. 티셔츠는 그중에서도 가장 싸다. 말끔한 흰색, 둥근 칼라. 10년전에 이런 옷은 9마르크 90센트에 팔렸다. 그후 독일에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기, 빵, 커리부어스트 등 거의 모든게 비싸졌다. 그러나 H&M 티셔츠는 예외. 지금도 4유로 95센트다. 이보다 더 쌀수는 없다.


H&M은 매년 지속가능성 보고서(Nachhaltigkeitsbericht)를 공개한다. 85쪽에 달한다. 여기엔 H&M이 아동노동, 착취, 그리고 환경파괴에 어떤 대책을 세우는지 설명되어 있다. 보고서의 결론은, "우린 착해요".


한 기업이 착하면서 동시에 초저가 티셔츠를 판매하는건 어떻게 가능한걸까?


이 질문에 쉽게 답할수 있는 곳은 H&M. 본사는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 위치하고 있다. 1층에는 H&M 매장이 있다. 여기서 팔리는 의류는 베를린, 도쿄, 샌프란시스코에서 팔리는 것들과 동일하다. "전세계에 똑같은 티셔츠를". H&M의 원칙이다. 그 윗층부터 사무실이 시작된다. 수석 디자이너와 지속가능성 담당부서 직원을 만났다. 그러나 티셔츠가 어떻게,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생산되는지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H&M은 이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영업상의 이유"로.


따라서 티셔츠의 경로를 추적하는 수밖에 없다. H&M이 그걸 모른다면, 별도 추적장치가 필요하다. H&M과 같은 기업이 일하는 방식, 면화 생산, 최저임금, 그리고 아시아 화물요금에 대해 잘 아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호르스트 삼(Horst Sahm)이 그런 사람이다.


50대 중반의 삼은 몇년전에 자기 회사를 차렸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섬유회사들이다. 그가 말한다. 초저가 티셔츠의 비밀을 캐려거든 우선 서쪽으로 여행을 가야 할거라고. 실마리는 거기에 있다.


3.


미국 텍사스에 사는 딘 바데만(Dean Vardeman)이 집을 나선다. 농장을 가로질러 공장건물로 들어선다. 올해로 60살인 그는 면화를 재배한다. 하루에 12시간 정도 수확한다. 동생, 아버지와 함께 수확 기계를 이용해서 수확한다. 사는 곳은 텍사스 북부의 루복(Lubbock). 22만 5천명의 주민들 대부분이 면을 수확해서 먹고산다. 밭을 일구고,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외국으로 판매한다. 공항 지대까지 밭이 이어져 있다.


그는 단순한 농부가 아니라 발명가이기도 하다. 그의 책장에는 금장식 목판이 붙어있다. 그위에는 "미국 특허 6018938”라고 쓰여있다. "대용량 면화 수확기계"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이 기계가 마당에 서있다. 이름하여 "존 디어 7460 면화 탈곡기"(John Deere 7460 Cotton Stripper)이다. 8열로 늘어선 수확기가 동시에 면화를 수확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사람이 할경우 300명이 필요한 작업을 기계 혼자서 해낸다.


4.


베를린 섬유 전문가 삼 씨에 따르면, H&M 티셔츠 한벌에 필요한 면은 400그램 정도. 가격은 작년 (2009년)까지만 해도 40센트 정도밖에 안했다. 티셔츠가 싼것은 원자재가 쌌기 때문이었다. 원자재가 싸다는 것은 그만큼 원자재가 많이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전세계 수요보다 많이 공급했기 때문인 것이다. 가장 뛰어난 면화 수확 기계를 보유한 사람이 미국인 바데만이다.


존 디어 면화 탈곡기 덕분에 티셔츠가 저렴해졌고, 그게 4유로 95센트 뒤에 감춰진 첫번째 비결인것 같다. 그럴듯한 비결이고, H&M 지속가능성 보고서 내용과도 부합한다. 미국 농부의 발명품 덕택에 더이상 예전 아프리카 노예들처럼 굽은 등으로 면화를 딸 필요도 없게된 것이다. 그럼에도 티셔츠는 여전히 헐값이다.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 숫자 앞에서는 그 가설이 무너진다. 40만 5089 달러. 이 금액은 지난 10년간 미국 정부가 바데만 가족에게 지급한 총액이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무엇으로부터? 인도, 그리고 말리, 부르키나파소 등 서아프리카 빈국이다. 그곳 농부들은 미국에 비해 거의 반값에 면을 생산한다. 존 디어 면화 탈곡기가 없는데도 그렇다. 그들이 가진건 두손 뿐. 하루에 쌀 몇접시 얻기도 버거운 사람들, 그들이 첨단 기계보다 저렴한 것이다.


미국 전역의 면화 농가는 총 1만 9천여 가구. 이들이 지난 10년간 국가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이 25억 달러. 그 덕분에 이들이 매년 100억개의 티셔츠를 만들고도 남을만큼의 면을 생산했다. 면 가격은 점점 내려갔다. 티셔츠 가격도 내려갔다. 미국 납세자들은 그나라 농부들만 지원한게 아니라, H&M 티셔츠도 함께 지원한 셈이다.


인도와 아프리카의 면화 농가는 어림잡아 1천만 가구. 이들은 국가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오로지 세계 시장으로부터만 돈을 받는다. 지난 수년간 지속된 낮은 면 가격으로는 도저히 살아남기 힘들다. 서아프리카에서는 수만명의 농부들이 밭을 버리고 도시 슬럼가로 내몰렸다. 인도에서는 수천명의 농부들이 농약을 마셨다.


5.


딘 바데만이 손에 티셔츠를 들고 있다. 창고에는 모터보트 두대와 그의 아버지 소유의 캠핑카가 보인다. 그가 정부로부터 지원받는걸 비판하긴 어렵다. 전세계 거의 모든 정부들이 할수만 있다면 농부들을 지원하려 한다. 최근에는 인도 정부도 지원정책을 시작했다. 자살하는 농부들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부자 나라에 사는게 딘 바데만에겐 행운이다. 그게 전부다.


그가 가리킨 인터넷 그래프 곡선. 상승일로의 주식 가격처럼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면 가격 변화를 나타내는 그래프였다. 지난 몇개월간 일어난 일은 놀라웠다. 중국 면화 농장 지역의 날씨가 안좋았던 것이다. 파키스탄 면화밭에는 홍수가 들이닥쳤다. 전세계 금융업계에서 면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주식보다 더 짭짤했기 때문이다. 전세계에 면이 넘쳐난다는 것도 이제 옛말이 됐다. 이젠 너무 적다. 가격은 상승했고, 앞으로 계속 올라갈 태세다. 바데만은 이윤을 많이 남길 것이고, 지원금은 더이상 필요없어질 것이다.


티셔츠 한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면 400그램의 가격은 이제 더이상 40센트가 아니라, 거의 1유로에 육박한다. 초저가 티셔츠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여행의 계획도 바뀌었다. 이제 문제는 4유로 95센트 티셔츠를 어떻게 생산할수 있었느냐가 아니다. 그보다는 H&M이 이런 전략을 계속 취할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되었다.


6.


수확된 면은 선적되어 미국을 떠나 해양을 건너 아시아에 도달한다. 삼씨에 따르면, 그곳으로 추적해가야 한단다.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Dhaka)이다. 거리, 좁은 길목, 집들, 슬럼, 1천 5백만명이 사는곳, 다카. 방글라데시는 전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이자, 전세계 최대 의류 공급지이기도 하다.


H&M이 직접 소유한 의류공장은 없다. 이것이 초저가 티셔츠의 두번째 비밀이다. H&M은 물품이 가장 저렴한 곳을 골라서 주문할 뿐이다. 중국,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등. 다카에 위치한 의류 공장은 총 3천여개. 그중 H&M의 티셔츠를 생산하는 곳은 어디일까?


개발도상국 자원봉사단체에서 힌트를 얻고, 노동조합으로부터 현지 관리인 이름을 알아냈다. 관리인들은 언론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들과 대화할 방안을 강구했다. 예를들어, 경영컨설팅 업체 직원으로 행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전시공간 출입증을 얻었고, 여름 원피스(Sonnentop), 스웨트셔츠(Sweatshirts), 그리고 H&M 로고가 달린 흰색 티셔츠도 볼수 있었다. 가격표도 선명했다, 4유로 95센트.


형제 4명이 설립한 이 회사의 이름은 Dulal Brothers Limited, 줄여서 DBL이다. 매니저는 금시계를 차고 턱수염을 기른 젊은 남자였다. 그에 따르면, 하루에 처리하는 미국산 면이 50톤이고, 이를 티셔츠로 환산하면 12만 5천개라고 한다. 이중 절반 정도가 H&M에 판매된다.


공장 내부를 들여다볼수 있을까? 매니저는 컴퓨터에서 파일을 하나 열더니, 모니터를 돌리면서 말한다. 공장을 방문하는 것보다, 이렇게 보는게 좋지 않겠냐면서.


키를 누르자 바이올린과 첼로가 연주되기 시작한다. 홍보영상이 재생되고, "세르비아의 이발사" 오페라로 들리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재봉기계가 보이고, 면 원재료에서 뽑혀나온 실이 면뭉치로 바뀌는 과정이 보인다. 바이올린 템포가 빨라지면 테너의 목청도 높아지고, 재봉기계를 다루는 십수명의 여성노동자들 앞에서 티셔츠 소매가 만들어진다. 모두들 웃고 있다.


7.


그들 중에 나즈마(Nazma)는 없었다. 그는 다카에 위치한 가장 오래된 DBL 재봉공장의 노동자이다. 곰팡이가 자라는 벽, 끝없이 줄지어선 재봉 책상들, 20개, 30개는 족히 될듯하다. 줄의 초입부에서 시작해서 소매, 가슴, 등으로 이어진다. 줄의 끝에 흰색 티셔츠 완성품이 놓인다.


나즈마는 그중 한 재봉틀 앞에 서있다. 올해 19살, 그는 작고 깡말랐다. 바느질이 아니라 작은 가위로 실을 자르는 일을 한다. 티셔츠의 칼라 부분 담당이다. 올해 H&M에서 새로 주문한 좁은 칼라 부분이다. 한땀 한땀, 센티미터 단위로 검사하는게 그의 일이다.


기계들이 줄지어 서있는 끝자락에 숫자가 구호처럼 적혀있다. "250". 이것은 시간당 티셔츠 250개라는 뜻이다. 이들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인 셈이다. 나즈마가 서둘러야만 할것 같다. 정확히 해내는 것도 중요하다. 물을 적게 마시는 것도 중요하다. 물을 많이 마시면, 화장실도 자주 가야 한다. 화장실에 자주 가면,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한다. 초저가 티셔츠의 비밀은, 이렇듯 나즈마가 화장실 가는 횟수를 얼마나 억제할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몇달간 그들은 티셔츠 생산을 위해 하루에 10~12시간, 일주일에 6~7일을 일한다. 이렇게 생산된 티셔츠는 뉴욕, 함부르크, 홍콩의 H&M 매장에서 잘 팔려나갈 것이다. 유럽과 아메리카의 대형 의류매장 앞에서 집회가 열린게 몇년전 일이었다. 이들은 의류공장의 노동조건을 집중 비판했다. 공장내 구타와 아동노동이 주된 비판지점이었다. "당신들의 노동자들을 짐승처럼 다룰수 있느냐" - 그런 비판이었다.


이 집회 때문에 기업 이미지가 위협받았다. 그때문에 본사에서는 공장 안에서 지켜져야 할 규칙과 금지 조항이 적힌 긴 목록을 보냈다. H&M의 행동규정(Verhaltenskodex)은 다음과 같다. "아동노동 금지, 노동자에 대한 폭력 금지, 화재예방". H&M의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임직원들과 연관기업 종사자들을 포함한 모든 분들에 대한 책임을 질것을 약속드린다"고 한다.


매일아침 7시반에 아즈마는 일터로 간다. 항상 동료 재봉사 두세명과 함께이다. 다카에서 젊은 여성이 혼자 길거리를 다니는건 보기 드물다. 남자들이 싫어하기도 하고, 구두닦이, 청소부, 과일판매상도 쉽게 봐넘기지 않는다. 불쾌한 주목을 끌게 된다.


나즈마는 방글라데시 북부 시골 출신이다. 그곳 여자들은 보통 일찍 결혼해서 많은 자식들을 낳아 기른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 미국의 딘 바데만의 침실만한 크기의 밭을 경작한다. 7명의 식구를 먹여살리기엔 턱없이 작다. 나즈마는 의류공장에서 젊은 여성 노동자를 모집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재봉사? 남자들 사이에서 창녀처럼 산다던데?" 아버지는 펄쩍 뛰었지만, 나즈마는 버스에 올랐다. 난생 처음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난생 처음 혼자 힘으로 돈을 벌었다. 먹을걸 사기 위해, 집세를 내기 위해, 그리고 가끔씩 립스틱을 사기 위해. 그걸 못하게 막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8.


의류공장 노동자 나즈마의 이야기는 고된 단순노동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젊은 여성이 자신의 자유를 찾는 이야기이고, 동시에 H&M 제품을 사는 프랑크푸르트 또는 로스엔젤레스의 어떤 젊은 여성이 겪을법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즈마에 대한 이야기가 H&M 홈페이지에 처음 올라왔을때, 그 글은 H&M 제품이 방글라데시에서 생산됨에 따른 긍정적 효과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있음을 설명했다.


사람들은 그 글을 읽고 아동노동 금지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1시간에 250개의 티셔츠를 만들지 못해도 일단 월급은 받을수 있고, 더이상 예전 H&M 행동규정이 없었을 당시처럼 얻어맞지는 않을테니 좋아진것 아니겠느냐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H&M은 착한 기업이야. 그러나 이런 사실은 간과할 것이다. 방글라데시에서도 하루에 1유로로 살기는 힘들다는걸.


1유로. 그게 다즈마가 자신의 노동의 댓가로 받는 금액이다. 한달에 3500 방글라데시 타카(Taka). 환산하면 36유로. 초과근무수당은 이미 포함되어 있다. 하루에 1유로 18센트 꼴이다. 이것이 초저가 티셔츠의 세번째 비밀이다.


H&M 행동규정에는 노동자의 존엄에 대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얼마나 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법정 최저임금 이하는 안된다"는게 유일한 조항이다. 행동규정은 노동자를 도와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게 아니다. H&M에 대한 평판을 보호해주기도 하는게 행동규정이다. "우리 노동자들은 인간처럼 대접받고 있다"고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월급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런 식으로 H&M은 좋은 기업이 될수 있다. 동시에 저렴하기도 하다.


다카의 임금은 19세기 독일 재봉사들의 월급과 비슷하다. 반면 H&M 비즈니스 모델은 그와 반대이다. 오늘날의 소비자 가격과 19세기의 비용이 만나는 것. 19세기의 임금은 티셔츠 한벌 사기에도 벅차다. 때문에 H&M 제국은 분리되었다. 한편으로는 매장제국, 또한편엔 공장제국.


9.


공장 홍보 비디오가 끝나자 매니저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DBL에는 세종류의 재봉사가 있다고. 방적, 직조, 그리고 염색. 이들을 서로 갈라놓을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날 경우, 그 열기를 와해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지난 6월에 그런 일이 있었다.


당시 나즈마는 1만명의 섬유노동자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분노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했던 때였다. 경찰관들이 곤봉을 들고 있는걸 봤기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뜻을 분명하게 전했고, 주먹을 높이 들어 외쳤다. "임금 인상, 우리는 살고 싶다!"


그러다 돌팔매가 날아들고, 경찰 진압이 시작됐다. 나즈마는 도망가는데 성공했지만, 다른 동료들은 미처 그러질 못했다. 끔찍한 장면이 연출되었고, 이것이 카메라 영상으로 담기기도 했다.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최루탄을 뿌리며 젊은 여성들을 때려잡았다.


결국 정부가 개입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잔업까지 포함해서 한달에 5000 타카 이상을 받을 것으로 나즈마는 기대한다. 환산하면 53유로 정도이다. 좀더 자주 집으로 돈을 보낼수 있게 된것이다. DBL의 입장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높은 비용"이다.


10.


이 회사가 티셔츠 완성품을 판매하는 가격은 얼마일까?


"약 1달러 80센트"라고 한다. 환산하면 1유로 35센트이다. 그가 덧붙인다. "지금까지는."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면이 저렴했고, 노동력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400그램 면 생산에 40센트, 티셔츠 생산에 95센트. 여기에서 신형 재봉기계 투자와 매니저 차량 및 운전기사 비용은 별도이다.


티셔츠 한벌에 1유로 35센트. H&M은 이 수치에 대해 답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삼씨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가격이 전세계에서 최적이다. 그는 그곳에 자주 가봤다. 베트남, 캄보디아, 여기저기 다 가봤다. 중국 공장과 협상도 해봤고, 터키 업자와 줄다리기도 해봤다. 그의 결론은 최고 1유로 40센트. 방글라데시에서 이 비용 이상은 나올리 없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그러나 면 가격이 두배로 뛰면, 누군가는 더 지불해야 하겠지. 정부가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누군가가 나즈마의 임금 인상분을 지불해야 할것이다.


누가?


임금인상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가 피흘리도록 얻어맞는 여성 노동자들의 사진은 유럽과 미국 방송에서도 소개되었다. 당시 다카 정부는 임금 인상을 약속했다. H&M도 약속했다. 모두들 이를 반겼고, 노동자들은 많은 임금을 받을수 있게 되어 기뻐했다는게 언론의 보도였다. 그럴수만 있다면 티셔츠 가격이 조금 올라가도 기꺼이 지불할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착하다. 그렇게 들렸다. 그러나 초저가 티셔츠는 앞으로도 그렇게 쌀것인가?


11.


나즈마는 한손에 티셔츠를 들고 있다. 축축한 담벼락 옆에 자리한 4층건물의 방 침대에 앉아있다. 철판으로 덧댄 벽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한편에는 3인가족이 자고, 또한편엔 나즈마와 그밖의 재봉노동자 5명이 함께 잔다. 밤마다 침대 쟁탈전이 사납다.


티셔츠 칼라를 만지는 나즈마, 하루에도 수천번씩 만지고 다듬는 실밥이다. 눈이 빠질것만 같아도, 이 셔츠들이 밉지는 않단다. 그래도 이게 다 뭔가 싶다. 방글라데시에서 티셔츠는 별로 인기가 없다. 여자들은 사리스(Saris)를 입고, 남자들은 좀더 단단한 웃옷을 입는다. 이렇게 얇은 칼라의 가벼운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다. 방글라데시에서 초저가 티셔츠는 아무 쓸데가 없다.


이걸 판매하기 위해, H&M은 공장세계에서 소비세계로 인식체계를 전환해야 한다.


12.


4유로 95센트. 이중에서 부가가치세를 제외하고 4유로 16센트가 H&M 수중에 들어온다. 1유로 35센트는 티셔츠에 지불한다. 남은 비용으로 티셔츠를 가능하면 저렴하게 유럽으로 운송해야 한다. 다카에서 독일로. 항공거리 7300 km이다.


모하메드 에자슬리(Mohammed Ezasli)는 크레인 위에 서있다. 방글라데시의 유일한 항구 치타공(Chittagong)에서 출발하는 콘테이너. 그 안에는 티셔츠가 한가득이다. 덴마크 기업 마에르스크(Maersk)의 마크가 달린 콘테이너. 모하메드가 그 속을 9천개 이상의 상자로 채운다.


오늘날 방글라데시발 독일행 구간에서 콘테이너 하나당 운송료는 불과 2800유로이다. 그게 시장가격이다. 여기에 대형고객은 할인을 더 받는다. H&M은 매우 큰 고객이다. 이들은 약 25퍼센트를 할인받는다. 계산해보면 H&M이 지불하는 가격과 맞아들어갈 거라는게 삼씨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콘테이너 하나당 2100유로. 콘테이너가 12미터 길이에 넓이와 높이가 각 2.5미터. 약 3만4천개의 티셔츠가 들어갈 것이다. 티셔츠 하나당 6센트 꼴이다. 콘테이너 덕분에 가격이 저렴해진다. 이것이 초저가 티셔츠의 또다른 비밀이다. 바다를 가로질러 3주후에 티셔츠가 독일에 도착하면, 원자재, 생산, 운송까지 다 합친 비용이 1유로 40센트를 넘지 않는다.


문제는 현재 콘테이너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생각보다 심하지는 않았고, 공장은 다시 돌아가고, 배는 다시 채워진다. 티셔츠, 신발, 카메라 등으로. 운송료는 올라갈 전망이다. 마에르스크는 오는 1월에 콘테이너 가격을 500달러 인상할 예정이다.


면, 최저임금, 운송요금. 초저가 티셔츠는 점점 비싸진다. 인상된 생산비용이 소비자 가격으로 직결되면, 한벌당 최소한 5유로 60센트를 지불해야 할것이다.


그게 뭐 대수냐고 할지도 모른다. 5유로 60센트면 여전히 저렴하다고 할수도 있다. 그것은 착시효과이다. 4유로 95센트는 마법의 가격상한선이다. 그걸 함부로 움직이긴 힘들다. 고객들은 이미 4유로 95센트에 익숙해졌다. 슈퍼마켓에서 초콜렛 하나에 1유로 이상 지불하기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H&M의 모토는 "유행과 품질을 최적의 가격에"이다. 티셔츠 한벌에 5유로 60센트, 그건 최적의 가격이 아니다. 그건 H&M 답지 않은 것이다.


모하메드 에자슬리가 크레인에서 내려온다. 미국 래퍼들처럼 머리에 두건을 쓴 그는 한손에 티셔츠를 들고 있다. 미소짓고 있지만 매니저, 농부와는 달리 보인다. 자랑스럽기보다는 들뜬 모습이다. 티셔츠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제 면화 가격, 최저임금 따위는 잘 알지도 못하고, 그에게 중요하지도 않다. 그에겐 오로지 콘테이너 뿐이다. 그는 예전에 공장 라인에서 일했다. 오늘날 그는 자동차도 굴릴만큼 여유가 생겼고, 예전에 비해 다섯배 많은 돈을 번다. 티셔츠는 그에게 부를 가져다 주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배는 수에즈 운하,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서 독일에 도착한다. 소비자 세상으로.


13.


돈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이런 질문은 낡아빠졌고, 아득하기까지 하다. 섬유공장 노동자 나즈마가 동료 5명과 함께 방을 써야 하는지 여부가 돈에 따라 결정된다. 당연하지 않은가?


좀더 재미있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돈은 누구 소유인가?"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빌 게이츠도 아니고 금융투자자 워렌 버펫도 아니다. 극소수 부자들의 자산은 외려 별게 아니다. 로스엔젤레스, 런던, 두바이의 쇼핑센터와 길거리를 매일 돌아다니는 모든 이들의 소유재산의 총합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뜻이다.


대략 15억명, 세계인구의 20% 정도가 H&M 옷을 사입을만한 여유가 있다고 한다. 사회학자들은 이들을 일컬어 "글로벌 소비계층"이라 부른다. 이들의 총자산을 추정해보면 185조 달러이다. 광고업계, 톱모델, 이미지 캠페인이 노리는 대상이 이들이다. 이들이 값싼 티셔츠를 구입한다. 이들이 예를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수 있을 것이다.


"H&M이 공장 관리자들로 하여금 고작 최저임금만큼만 지불할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그럭저럭 먹고살만큼의 임금을 지불하도록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제정된 행동규칙을 감시하는 주체는 어째서 H&M 뿐이며, 독립된 감시기구가 그걸 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뭘까?”

"동네 골목에서 사먹는 커피 한잔 값밖에 안되는 티셔츠를 굳이 사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 가격이 커피 두잔 값 또는 세잔 값이 된다면 모든 이들이 먹고살기에 충분할만한 돈을 받고 살수 있는것 아닐까?"


글로벌 소비계층은 그렇게 묻지 않는다. 그저 구입할 뿐이다.


티셔츠 한장당 4유로 16센트가 H&M에 들어온다. 생산과 운송 과정에서 1유로 40센트가 빠지고, 2유로 76센트가 H&M의 이윤으로 남는다. 일단은 그렇다. 호르스트 삼이 추정컨대, 2유로보다 좀 더되는 이 금액으로 매장 임대료도 내고 독일내 운송비용도 내고 매장 직원, 회계원 월급도 주고 카탈로그도 만들고 광고판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티셔츠에는 "Made in Bangladesh”가 적혀있지만, 판매가의 절반 이상은 독일에 남을 것이다.


결국 티셔츠 한장당 60센트의 순이익이 생긴다. H&M이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장의 티셔츠를 판매하니까, 초저가 티셔츠로 많은 돈을 벌수 있는거라고 생각할수 있겠다. H&M은 이 수치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한다. 그러나 기업컨설턴트 롤란드 베르거(Roland Berger)를 비롯한 섬유업계 전문가들은, 사실에 부합할거라고 답변했다.


14.


H&M 매장 2층에 걸려있는 티셔츠. 이 매장의 이름은 Spi이다. H&M 직원들은 함부르크 Spitaler Strasse 12번지의 매장을 Spi라고 부른다. Spi는 독일 최대의 H&M 매장이다.


점심때라서 매장이 꽉차있지는 않지만, 조용하지도 않다. H&M이 조용할 일은 전혀 없다. 어디에선가 팝음악이 흘러나온다. 재잘대는 10대들이 가슴에 원피스를 대본다. 직원 한명이 금색 칵테일 의상을 정돈한다. 새해맞이 파티 품목이다.


직원의 이름은 안네(Anne). 매장에서 성(Nachname)을 함께 쓰는 경우는 없다. H&M에서는 누구나 이름(Vorname)만 부른다. 사장도 예외가 아니다. 기업은 가족과 같다. H&M은 분명히 세계에서 가장큰 가족일 것이다.


1년반 전에 안네는 졸업시험(Abitur)을 마쳤다. 앞길이 막막했던 그는 평소에 옷을 사던 그 매장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성까지 밝히자면 슈미트(Schmidt)이다. H&M이 맘에 든단다. 다양한 경험을 할수 있고, 역동적이어서 그렇다. 며칠 전에 특별 신상품이 매장에 들어왔는데, 파리 패션 스튜디오 수석디자이너 란빈(Lanvin)이 기획했다. 남성 자켓도 있고, 물량은 적지만 Haute Couture 등의 유명 브랜드 품목을 수십유로 선에 구할수 있다. 아침 4시부터 Spi 매장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손님들도 있다.


얼마후, 방글라데시 섬유공장 노동자 나즈마가 처음으로 신규 책정된 월급을 받는다. 5천 타카 이상 받을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수중에 들어온 돈은 4천 타카를 조금 넘을뿐. 환산하면 42유로이다. 공장에서 일한지 3년만에 나즈마가 보너스를 받은일이 있는데, 관리자가 그걸 제외하고 월급을 지급한 것이다.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경쟁기업들에 대한 비교우위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DBL은 비용을 줄이려 한다. 티셔츠는 계속 초저가여야 한다.


면 가격 역시 12월초에 소폭 하락했다. 주식시장에 따르면 최고점을 찍고 넘어갔다고 한다. 가격이 폭등했을때 나타난 현상. 폭등한 면 가격을 한껏 이용하기 위해, 전세계의 농부들이 생산량을 자꾸만 늘렸다. 미국 농가만 보더라도 지난해에 비해 1.5배 많은 양을 올해 수출했다. 곧 전세계에 면이 넘쳐날 것이다.


H&M은 소비자 가격을 낮은 가격에 유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량생산의 힘 위에 서있는 기업이니까. 올해에만 H&M 신규 매장이 전세계에 220곳에 달한다. 모스크바, 이스탄불, 상하이, 서울 등지에서 티셔츠를 살수 있게 되었다. 소비자 세상은 계속 확장된다. 많은 매장은 많은 티셔츠를 뜻한다. H&M이 더 많은 티셔츠를 DBL과 같은 기업에 주문한다면, 운송 할인율도 더 높아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옷 가격은 계속 저렴할 것이다.


이것이 초저가 티셔츠의 마지막 비밀이다. 사람들이 계속 많이 사는한, 티셔츠 가격은 계속 4유로 95센트에 머물 것이다.


안네 슈미트가 한손에 티셔츠를 들고 있다. 검은 옷을 늘씬하게 입고 적갈색 머리를 한 그는, H&M 일이 재미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은 일일뿐, 그 이상은 아니란다. 나중에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손가락 끝으로 티셔츠 질감을 확인하고, 위를 쳐다보다가, 잠자코 있다가, 미소짓는다. 자랑스럽지도 않고 들뜨지도 않고, 약간 멋적은 듯하다. 뭐 거창한 할말이 있겠는가. 그냥 티셔츠일 뿐이다. 그뿐이다.


(끝)


[1] http://www.zeit.de/2010/51/Billige-T-Shi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