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모

비단길, Seidenstraßen, Silk Road가 새롭게 인식된다! 본문

세미나 발제문/12

비단길, Seidenstraßen, Silk Road가 새롭게 인식된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28. 05:17

(2012년 11월 24일(토)에 류정숙 회원께서 발표하신 발제문입니다.)


비단길, Seidenstraßen, Silk Road 새롭게 인식된다!

유정숙 (2012.11.24)


출처 : http://contiki.tistory.com/429


2012 4월부터 시작한 주제별 아시아에 대한 공부를 시작할 ' 우리는 한국이라는 아시아에 속한 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인데 아시아사람들과의 교류가 유럽이라는 나라의 사람들과의 교류에 비해 생소한가?'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역사의식을 가지고 찾아보고자하는 제안이었다 (4월제안서 참조).

이번에 아시아에 대해 같이 공부해 보는 동안 많은 참여자들이 처음에는 어떤 나라가 지구본에서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많이 해소된 같다. 나에게는 특히 비단길의 세계사적 의미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서 , 쌍방의 교류가 (한반도에서 아프리카까지) 기원 전서부터 시작되어 길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여기서 이번에 찾아낸 가지 특징적인 ( 길과 관련된 인물 -한반도, 중국, 인도 )들을 살펴보면서 피부로 느껴보고자 한다.

1. 비단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길로 이어진다. 중에서 아래에 소개하는 경로가 많이 이용된 같다. 비단길은 육로가 먼저 개척다고 말하고 있고 해상로가 6세기경에 개척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허황옥의 해상길은 훨씬 전에 이루어 졌다.

2. 비단길 외에 이전에 차마고도 (차와 말을 바꾸는 , 200 앞서) 있다.

3.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 (33-189) 인도로부터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가야국까지 (위키백과사전, http://www.yes24.com/24/viewer/preview/2867598?PID=146051 김병모) ; 메소포타미아문명 (쌍어)

4. http://shlim1219.tistory.com/203 (혜초의 아시아 40여개국을 방문한 왕오천축국전에 관하여)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faas7777&logNo=40119201480 (혜초의 여행길지도 포함, 설명; 시안, 돈황, 투루판...)


5.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oominim&logNo=20152789753 (해상왕 장보고 바다실크로드에서 활약; 청해진, 통일신라시대에 태어남, 9세기의 동아시아)

6.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sasm1944&logNo=80128442533 (차마고도에 관하여, 실크로드보다 200 일찍 만들어졌다고 )

7. 신라의 원광, 혜초, 자장, 의상, 최치원, 서유기에 나오는 현장법사, 사마천 ( 사기; 서기 145 출생설;당시 통치자 한무제 (서기 156-87) http://cafe.daum.net/suliha/H1JR/62?docid=n20m|H1JR|62|20110131132101&q=%BD%C7%C5%A9%B7%CE%B5%E5%BF%CD%20%B0%FC%B7%C3%B5%C7%B4%C2%20%BF%AA%BB%E7%C0%FB%20%C0%CE%B9%B0%C0%BA%3F

동림 박용근의 사마천과 사기 (2012 3 20 인터넷트에 올림)




http://noas.tistory.com/1093 (실크로드여행사진과 설명)


8. 비단길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 1833-1905; Red Baron 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1 세계대전 때의 전투기 조종사Manfred von Richthofen 삼촌) 19세기 후반에 중국의 각지를 답사하고 나서 1877 「중국」이라는 5 권을 저술하였는데 1 후반부에 동서 교섭사를 개관하면서 중국으로부터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유럽과 인도로 수출되는 주요품목이 비단(Silk)이었던 것을 감안해서 교역로를 독일어로 '자이스트라센(Seidenstraßen, 비단길)'이라고 명명하였다. 그후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명명을 따라 실크로드라고 부르게 되었다. http://sales.happyreport.co.kr/search/view_page.asp?topcat_id=01&midcat=02&rday=20070550017601


서문물의 가교 실크로드는 중국의 장안(長安)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는 감숙성의 하서주랑을 가로질러 옥문관, 양관을 지나서 신강. 중앙아시아. 서아시아를 경유하여 고대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이르는데 길이가 무려 7,000km 달하는 고대 세계 문명의 대화와 교류의 통로였다. 실크로드는 세계적으로 역사가 깊은 문명국과 중국, 인도, 이집트와 바벨론의 연결로였다. 실크로드가 지나간 지방은 페르시아, 마케도니아제국, 로마제국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지역의 대제국이 출현했으며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 인도문명, 중국문명 고대문명이 찬란한 꽃을 피웠고, 실크로드의 개통으로 중국문명이 세계문명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로 표현할 없을 정도이며,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중국에 들어와서 유가.도교문화와 서로 융합 되어 중국의 전통문화를 형성하였다. 특히 불교는 오랜 시간동안 중국인들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주요 의식형태로 자리잡았고 불교 전래 과정중에 대량의 석굴예술과 사원 사탑을 남김으로써 동서방 문화교류를 역사적으로 고증하고 있다. 실크로드는 인류문명의 길이며, 동서방 왕래와 교류의 길이었다. 또한 종교가 전파되는 길이었고 세계 경제무역의 길이었다. 실크로드의 위력은 심오한 문화와 찬란한 불교 예술에 있다. (유정숙: 글쓴이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협소한 개념의 비단길을 말하고 있으나 비단길은 한국, 일본, 구소련영역까지 이어지는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세계경제무역의 길이란 또한 영토뺏기 각축장을 의미한다)
장위구르자치구-거주민의 3분의2 위구르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곳이다. 중앙의 타클라마칸 사막 주변으로 여러 도시가 발달되어 있고 북쪽으로는 타림분지가 넓게 펼쳐진 곳이다. 중심 도시는 우루무치로 철도 항공 등의 교통이 중국의 주요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 자치구의 중앙으로 천산산맥이 가로 놓여져 있으며 이곳은 실크로드의 중심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도시로는 우루무치,악수,카쉬카르, 호탄, 코알라, 이닝, 투루판, 하미, 쿠차등의 도시들이 있다.

서안> 중국 섬서성 중부에 있는 성도. 인구는 20 명으로 관중분지의 중앙부이며, 남쪽에 종남산이 솟아있다. 과거 동양과 서양의 문화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기점이며, 우리에게는 서안보다는 오히려 장안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고도이다. 오늘날, 서안은 중국의 신흥 내화 공업지역 가운데 하나이며, 20 개의 대학과 연구소 등을 갖춘 교육 도시이기도 하다.
(진시황릉: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고, 만리장성을 축조한 황제답게 둘레가 6.2km, 높이가 40m 달하는 현재도 발굴 작업이 계속되는 황릉은 무덤 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야산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진시황릉에는 섬뜩한 느낌이 정도로 수많은 토용(토용:찰흙으로 빚어서 구운 허수아비의 한가지. 순사해야 사람 대신에 무덤에 묻었다)들이 일렬로 서서 저마다 각각 다른 표정으로 충성스럽게도 진시황제가 부활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흙으로 빚어진 사람과 형상의 실물과 비슷한 크기의 토용들이 만개가 넘게 도열하고 있다. 토우군들은 진시황의 명령에 의해 그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서안시내에서 동북쪽으로 30km 거리에 있다. 경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으므로 절대로 사진을 찍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화청지(華淸池): 서안에서 25KM정도 떨어진 여산 산록에 있는 온천이다. 역대 제왕이 행궁별장을 세워 휴양했던 곳이며, 당나라 말엽 양귀비와 현종이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오간가는 군별 장학량이 장개석을 가두어놓고 공산당과의 국공합작을 강요했던 시안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온천은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수온 43℃ 쾌적할 아니라, 석회 여러 가지 광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관절염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누구나 약간의 입장료만 내면 목욕할 있는 대중탕이 되었다.
비림 섬서성 박물관 안에 있지만, 박물관 보다 널리 알려져 있다. 비림은 송나라 개성 석경을 보전하기 위해 세워졌다. 개성 석경에는 114개의 석판에 유교경전 13(655,025) 조각한 것으로 명사들의 진적비 등이 집중되어 비의 숲을 이루게 되었다 하여 생긴 이름이 비림이다.


자은사: 대안탑 당나라의 고승 현장 유골을 모셔놓은 자은사(慈恩寺), 서안성에서 남쪽으로 4km정도 위치해 있다. 대안탑은 자은사에 있는 7 탑으로 현장이 가져온 150개의 사리와 8개의 불상, 657권의 불경을 가져온 것을 기리는 탑으로 정사각뿔 모양의 외관도 멋이 있지만,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자은사의 경내와 서안의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있다.


천복사: 소안탑 당나라의 고승 의정(義淨) 기린 절이다. 천축(인도) 여행한 의정은 천복사에서 배를 타고 인도까지 가서 가져온 400권의 경전과 경전을 번역하려고 탑을 세운 높이 45m 탑이 소안탑이다. 자은사의 대안탑이 남성미를 자랑한다면, 탑은 곡선미를 뽐내는 여성적인 탑이라 있다.)

> 기원전 111 한나라 건설된 도시이다. 중국과 서방세계를 잇던 비단길 실크로드에 관문이었던 돈황은 원래 현재 위치보다 서쪽으로 25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현재도시 기반은 청나라 이룩된 것이다. 고비사막 가운데 자리잡은 돈황은 문화의 교류이자 비단길을 오가는 사신과 상인들의 오아시스였다. 그러나 해로가 개척되자 비단길의 이용은 차츰 줄어들게 되었고, 그와 함께 도시도 빛을 잃어갔다.


(막고굴: 돈황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명사산의 절벽에 492개의 석굴이 있다. 4세기부터 시작해 16개국, 남북조, , , 오대, , 서한, 1000년에 걸쳐 만들어진 석굴들을 막고굴이라 부르는데 492 동굴과 45 평의 벽화 2,000 개의 조각상이 아직 현존해 있다. 막고굴은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길며 가장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방대한 규모의 예술가치가 가장 높은 세계예술의 보물이다. 가장 중요시되는 석굴은 17 석굴로 진대(晉代)부터 송대(宋代)까지의 수많은 중요 문서들이 발굴된 곳이다.) 특히 장경동은 신라의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 보관되어 있었다.


( 사산(鳴沙山), 월아천(月牙泉): 명사산은 전체가 모두 사막으로 이루어졌는데 동서의 길이가 40km, 남북의 길이가 20km 된다. 산의 높이는 250m 칼날처럼 날카롭고 호수의 물결과 같은 무늬가 있다. 모질게 불어오는 고비사막의 열풍을 견디어내는 명사산, 바람에 실려가지 못한 모래들··· 그렇게 인내심이 강한 모래만이 남아서 밤마다 한이 맺혀 윙윙 운다고 이름이 명사산이 명산. 한방울 내리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서 번도 멎지 않고 샘솟는 초생달 모양의 신비의 월아천, 명사산 왼쪽을 흐르는 월아천은 남북의 길이가 100미터, 동서의 길이는 25미터나 되며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은 5미터이다. 호수물은 거울처럼 맑고 투명하며 주변에는 갈대가 무성하여 미풍이 불어오면 호면에 잔잔한 물결이 일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루판 吐魯番- Turpan> 전체면적은 15,738㎦이고 인구는 209천여 명으로서 위글족, 한족, 회족 등의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투루판은 위글어로 도회(都會)라는 뜻이다. 1913년에 투루판현을 설치하였으며, 1984 12월에 투루판시로 승격되었다. 투루판시는 실크로드의 주요 교통도로이며, 난신 철도가 북북를 관통하며 (광물자원으로는 소금, 석탄, 강철, 소다, 유산나트륨이 풍부하며, 기계, 화공, 시멘트, 전력, 식품가공, 제염, 비단제조, 과일가공품 공업이 발달하였다.) 특히 무핵 백포도와 비단제품이 유명하며 신강의 3 비단도시의 하나이다. 주민의 95% 위구르족이며, 이슬람교 문화에 실크로드의 옛날의 시간의 흐름을 있다.


(버즈커리커 천불동(千佛洞): 화염산을 따라 올라가다 목두구의 낭떠러지에 현재 70 개의 동굴이 있다. 남북조 후기에 최초로 지어졌으며 , 송대 그리고 원대를 거쳐 지금까지 이미 1,400여년의 역사를 지닌다. 풍부하고 다채로운 동굴안의 벽화는 고대 투루판 지구에서 거주했던 사람들의 지혜와 창조정신을 보여준다. 중국의 주권이 유린되던 시기에 동굴 안에 있던 진귀한 예술품들이 대량으로 약탈당했다. 해방 후에야 비로소 자치구 문물 보호 지역이 되었다.)


카얼장 (地下水路): 믿을 없는 과거의 지하수로, 2,000여년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만리장성, 경향대운하와 함께 중국 3 고대 건축이라고 부른다.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는 1,600 갈래의 카얼장이 있다.그중 트루판 지구에는 1,000 갈래, 총길이 5,000km이다. 카얼장은 지면 수로, 지하 수로, 가로막 3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3km에서 최장길이 20-30km 되어 있다.


(화염산(火焰山): 동서로 100킬로미터 뻗어있고 봉우리가 높은 승금구(勝金口) 부근은 해발 851미터에 달한다. 화염산은 전설적인 산으로 중국 고전인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꾀를 내어 철선공주와 싸워 물리쳐 불산을 헤치고 삼장법사와 일행을 무사히 구출했다는 불산이다. 화염산에 노출된 암석은 쥬라기, 백악기, 3 사암 붉은색 니암이 주를 이루며, 여름철에는 흥암사암(紅岩砂岩) 띠에 비친 붉은 빛이 반사되어 마치 붉은 빛을 내뿜으며 활활 타오르는 활화산을 닮아 이름이 화염산이 되었다고 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전체가 불바다를 이루며, 가까이 가면 달걀을 익혀 먹을 있는 지열 80도인 산의 뜨거운 열기가 사람을 덮친다.


(교하 고성(交河故城): 기원전 2-14세기 사이에 존재하던 교하라는 나라의 수도였던 곳이다. 대지를 파서 축조한 독특한 성으로 버들잎형 낭떠러지 섬에 세워져 있으며 갈래의 작은 강이 교차하면서 감돌고 있다. 내에는 남북을 관통한 길이 있으며 양측의 밀집된 건축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도로변의 문을 봉해 버렸다. 건축물들의 특징은 송대 이전 성시(城市) 중의 곡방제도와 똑같다. 북쪽에는 불교사원이 하나 있고, 내에는 불탑이 있다. 기원전 2세기에서 서기 5세기 중엽까지 교하고성은 차사전(車師前) 왕정의 소재지였다. 7세기 중엽 왕조가 교하성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하였으나 13세기에 폐기해 버렸다.)


(고창고성(高昌故城): 둘레길이가 5km이고 성벽은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성의 내부는 내성, 외성, 궁성으로 나누어져 수나라때의 장안성과 비슷하며 여기저기 건축터가 남아 있다. 서남쪽에 있는 사찰은 매우 보존되어 있어 사찰 내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문창의 불탑도 선명하게 있다. 성안의 건축물은 모두 분토나 굽지 않는 벽돌로 지어졌다. 고창고성 옛터는 기원전 1세기에 짓기 시작했고, 기원 640 당나라 때는 고창에 서창주를 설립하였다. 9세기 중엽 회골(回骨)사람들이 몽골로부터 이곳으로 이주해 도읍을 고창성으로 세웠기에 역사적으로 고창회골이라 불렀는데 대략 14세기에 고창성도 폐기되고 말았다.)

우루무치 烏魯木齊 Urumqi> 신강 위구르자치구 수도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이다. 면적은 835㎦이며, 36개의 민족이 모여 사는 인구 90만의 도시이다. 위구르족이 가장 많은데 밖에는 카자흐, 러시아족 13개의 소수 민족이 살고 있으며 문화 또한 가지각색이다. 남쪽으로는 타칼라마칸 사막과
곤륜산맥에 닿아 있고, 서쪽은 실크로드 오아시스의 요지인 이녕을 지나 소련, 파키스탄으로 이어진다. 옛날에는 천산산맥의 북으로 가는 천산북로와 남쪽을 가는 천산남로라는 이름으로 나뉜 실크로드 였다. 천산산맥 기슭에 위치한 도시 중심의 해발고도는 900m, 연강우량은 200㎜이다.


( (紅山) 인민공원: 홍산은 모습이 떠오르는 해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홍산에 오르면 우루무치 시내를 한눈에 있으며, 아편전쟁의 산파역을 임칙서의 성고상이 있다. 홍산을 내려오는 도중에 있는 용수로를 건너면 왼편에 인민공원이 있다.
천지 (天池) 우루무치에서 동북쪽으로 115km 떨어진 천산산맥의 주봉인 버거다봉(博格達峰) 중턱에 있는 호수이다. 해발 1,890m 고도에 깊이 90m, 면적 4.9㎦의 화산이 분출했던 분화구로, 깊이가 100미터나 되는 천연호수이다. 눈으로 뒤덮인 천산산맥을 수면에 그대로 반사하고 있는 아름다운 호수이다. 봉우리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덮인 산봉우리, 투명한 수면에 산자락들이 발을 담그고 있는 경치는 절경 중에서도 절경이다.
신강 위구르 자치구박물관 푸른 돔과 석조의 훌륭한 건물이다. 3~4 전의 미라를 비롯해 신강성에서 출토된 문서나 토기등 광대한 자치구내에서 출토한 2000 점의 문물이 시대 순으로 진열되어 있다. 수장품은 3만점에 이른다고 한다.)

카쉬가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초원으로나 인도로 있고 서역의 천산남로나 사막남로로 진출할 있는 교통의 요지이자 경제와 군사의 요충지였으므로 옛부터 카쉬가르는 크게 번영할 있었다. 흔적이 시가지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바자르이다. 이슬람교도 위그루족의 도시이며 인구 25만의 91% 위그루족이다.


(아이티가 르사원(淸眞寺): 신장 최대규모의 사원 1422년에 창건된 이후 여러번의 보수공사를 거쳐 1872년에 대규모 확장 공사를 했다. 결과 남북 140m, 동서 12m 면적 16,000㎡의 거대한 모스크가 되었다. 정면의 높이는 12m, 좌우 첨탑은 18m, 벽면에는 세밀한 문양이 조각되어있다. 사원내부에는 정원과 예배당이 있고 이슬람교의 축제일인 쿠루반절과 로즈절에는 2-3 명의 신도가 이곳을 찾는다.
아말극화탁마찰묘 16세기말 이슬람교의 저명한 지도자 아파크호저와 그의 가족의 능묘로 흔히 존자(尊者) 묘라고 불린다. 건륭제의 위구르인 후궁 향비(香妃) 곳에 묻혔다는 잘못된 전설 때문에 향비묘라고도 불린다. 1948 지진으로 묘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묘실이 파괴되었지만 1974년에 다시 복구하였다.)
야르칸드(莎車) 전한(前漢) 왕망의 ( 8-25) 멸망하고 후한이 들어서면서 중국도 서역에 진출할 힘이 없고 흉노도 세력이 약화되자 서역 전역은 독립왕국들의 전성기가 되는데 당시 아르칸드는 최대의 강국이 되는데 특히 현왕(賢王) 때는 선선, 호탄, 차사, 쿠챠 등이 모두 복속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87 반초(班超) 병력 2 5천이나 되는 대군을 거느리고서야 겨우 사차를 제압 했다는 고하니 당시 야르칸드가 서역 최대의 강국이었음을 있다.

호탄(和田) 곤륜산에서 발원한 동족의 백옥강과 서쪽의 흑옥강 사이에 위치한 호탄시 일대는 일찍부터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하여 서역 최대의 오아시스 왕국을 건립할 있었다. 견직물과 모직물, 그리고 연옥의 산출로 대상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서역의 대왕국이 되었다.
타클라마칸 사막 횡단 타클라마칸은 위구르 kakkiri(죽음) makan(끝없이 넓은 지역) 합성어다. 한번 들어가면 나올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실로로드의 개척사는 다름아닌 타클라마칸 사막을 우회하는 길을 뚫어내는 과정이었다

http://blog.daum.net/topyung/7151174

2008-10-21 17:24 | 출처 : 네이버

---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