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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5장 -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를 되찾자 본문

세미나 발제문/1415 반란의 도시-데이비드 하비

반란의 도시 5장 -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를 되찾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2. 28. 03:21

반란의 도시 5장 –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를 되찾자
 
베를린 사회과학모임 2월 21일
박동수 / 김강기명
 
5장에서 저자는 이전 장에서 제기했던 문제의식을 다시 한번 구체화하면서, 도시의 저항운동이 반자본주의 투쟁의 구심점임을 입증하려 한다. 이는 노동운동과 계급투쟁을 통한 반자본주의 투쟁을 주장하는 전통적인 좌파들의 이론과 다른 관점이다. 즉,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도시 내부의 투쟁과 저항운동 자체가 이미 반자본주의 정치의 핵심이었다는 내용이다.
 
전통적 좌파, 즉 사회주의 정당, 공산주의 정당, 노동조합 등에 속한 사람들은 정치적, 전술적 전제를 깔고 도시 기반 정치운동을 해석하는 습성이 있다. 이때문에 도시 기반 운동의 잠재력을 과소 평가하고 오해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들의 눈으로 볼때, 도시 사회운동은 기껏해야 계급투쟁운동의 부산물 혹은 그로부터 파생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파리 코뮌 또는 영국 인두세 반대운동 등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서 볼때에,  오히려 도시 기반 투쟁을 벌일 경우에 성공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혁명에서는 노동자 계급 전위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국가와 계급의 소멸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역사상 그것이 실현된 경우는 많지 않다. 마르크스는 계급적 지배관계가 자주적으로 노동자 사이의 협력관계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들어 노동자관리, 자주관리, 노동자 협동조합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체 주도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를 바꾸려는 시도는 아직까지는 지구적 차원의 반자본주의 해법 모델로 실현 가능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자본주의 경제 질서 안에서 활동하는 모든 기업은 가치 생산과 가치 실현이라는 자본주의 법칙을 떠받치는 '경쟁강제 법칙'에 복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 관리기업이나 협동조합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본주의적 경쟁 상대를 흉내내다가 독자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적대적인 금융환경과 신용제도, 상업자본의 약탈 수법을 이겨내기 힘들다. 
 
결국 반자본주의 투쟁은 노동과정 내부의 재조직화를 이루어야 하고, 세계시장 전반에 작용하는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을 대신하는 정치적, 사회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또한 국제적 노동 분업과 교환 실천 및 교환 관계를 통제할 정치적 조직적 능력을 길러내야 한다. 전통적 좌파는 국가권력의 획득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고, 공산주의 국가들은 러시아 혁명 이후 자본주의 세계시장에서 고립되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후 이 전략은 버림받고 폐기되었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갈래의 대항운동들이 시민사회 안에서 세력을 키우는 방식을 택하면 궁극적으로 국가가 사멸할수 있다는 생각이
부각되었다. 이를 '흰개미 이론'이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에 걸친 노동 분업과 경제거래를 어떻게 재편해야 모든 사람이 질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할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나키스트 사상가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가 지적한 대로, 자치 공동체가 주변의 더 큰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시스템과 관계를 맺을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매우 까다로운 문제이다. 민주적 노선에 따라 조직된 공동체가 더 커다란 구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들의 창설 원리와 타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본주의적 창조적 파괴라는 혼란스러운 과정은 좌파집단을 응집성 없고 파편화된 상태로 만들고 말았다. 좌파들은 세계시장에서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대안도 만들어내야 하고, 협동적 노동자의 생산 문제를 민주적이고 집단적으로 결정하고 운영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 좌파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가가 딜레마이다.
 
실현 가능한 반자본주의 운동이 등장하려면 다음 세가지 문제에 대해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1. 지구적 차원의 불평등 문제이다. 세계 인구 대부분이 물질적으로 가난해지고 있으며, 인간의 능력과 창조력을 꽃피울 잠재성이 좌절되고 있다는 점이다.
2. 환경의 악화와 생태계의 변질에 대한 급박하고 명백한 위험을 인식하는 것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제도의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3. 경제성장 만능주의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경제성장은 자본의 지속적 축적과 재생산을 위한 절대적 조건이지만, 이는 영원히 지속될수 없다.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막는 지배적 계급관계를 철폐해야 한다.
 
진보좌파들이 준비해야 할것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수 있다.

1. 도시 시민들이 약탈당한 계급적 착취를 인식해야 한다. 예를들어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는 것만큼이나 임대료로 지출하여 결과적으로 자본가 계급에게 돌려주는 셈이라는걸 직시해야 한다.
2. 잉여가치가 창출되는 장소는 공장이 아니라 도시다. 불안정한 처지에 놓여있는 미조직 도시노동자들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프롤레타리아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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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에서부터 하비는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좌파가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해 "도시"를 운동과 투쟁의 중심에 놓아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앞부분에서는 특히 전통적인 좌파 및 마르크스주의 운동에서 중심에 놓여 있는 노동자 운동이 어떻게 갱신되어야 하는지를, 뒷부분에서는 도시운동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와 그 극복방안에 대한 아이디어 스케치를 제시하고 있다.
 
노동운동에 있어 하비가 일관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 사업장 중심, 피고용 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이다. 이에 대비되는 것은 한 지역(도시) "노동계급" 전체의 운동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지역 연대 노동운동은 단지 고용된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그 지역의 자본 혹은 삶을 재생산하는 활동 모두를 노동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들의 연대를 통해 사업장에서의 노동운동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재구조화하는 노동운동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노동을 이렇게 넓게 이해하는 것은 특히 6­70년대 이탈리아의 (후기) 노동자주의(Post­Operaismus)가 주창한 "사회적 노동자" 개념과 맞닿아 있다. 이후 네그리&하트에 의해 "다중(Multitude)"으로 발전하게 되는 이 이론은 잉여가치가 단지 공장이나 사업장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 수준에서 창출되는 게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사실상 노동자라는 논의를 담고 있다.
 
지리학자인 하비의 논의는 이 "사회적 노동자" 논의를 지역적 차원으로 구체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사실은 오늘날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처음부터 ­ 앞 장들을 참조) 도시는 자본주의적 관계를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처럼 간접적으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재생산하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에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이 사업장이 있는 도시의 '주민'들 역시 자본의 가치법칙에 대항하는 노동자 연대의 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하비는 사실상 좌우를 가리지 않고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도시권"(right to the city) 개념을 좌파적 의미로 재해석할 것을 요청한다. 실제로 "도시권"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많은 지방자치나 직접민주주의, 생태도시 등 여러 개혁적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으므로, 좌파가 이것을 배제하기보다는 포섭하고, 더 급진화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전략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도시권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권리가 아니라 만들어져야 할 권리,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적 도시를 창조할 권리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특히 그 동안 좌파가 주목하지 않았던 주변부 대중이나 불안정 노동계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 졌으며, 난민이나 이주노동자를 비롯해서 도시에 있지만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민권 투쟁 역시 도시 및 노동운동의 핵심으로 자리하게 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러한 사회주의적 도시운동의 결과는 어떤 모습일까. 하비는 여기서 어떤 정답을 곧장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실제로 어떤 혁명적 상황 속에 놓였던 도시(볼리비아의 엘 알토)의 사례를 검토하고, 거기에서 영감을 끌어내는 것으로 이 책을 갈무리 하고 있다. 여기서 하비는 2000년대 몇번이나 대중봉기가 일어나며 모랄레스 정권을 세우고, 또 반혁명의 시도를 좌초시켰던 엘 알토의 도시운동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들을 우리에게 읽어주고 있다.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인간과 장소 사이의 긴밀한 유대다. 하비에게 놀라웠던 것은 보통 서로 간의 차이가 크고, 그것이 갈등 요인이 되는 사회주의나 아나코 생디칼리즘에 기반한 노동운동(이념)과 원주민들의 자치운동(문화, 정체성), 기타 어느 정도 위계적인 거버넌스 체계(제도) 등이 결국에 하나로 모여 혁명적 운동으로 폭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갈등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만남을 추구했던 것은 각각의 급진적이고 민주적인 전통들을 하나로 모아내며, 우파의 위협 앞에서 도시 전체의 연대를 구축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 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결코 종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비가 인용하고 있는 라자르의 말처럼, "국가 시스템과 비국가적 장소 양쪽의 다양한 행위 주체가 엘 알토에 대해 서로 독자적이고 분리된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 지점에서 도시 운동의 근본적인 딜레마가 나오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자치적, 혁명적 혹은 반란의 도시를 구축한다고 했을 때 법과 경찰, 행정과 같은 국가기구들 혹은 국가시스템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국가)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논의에서 언제나 "답이 없는" 논쟁주제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비는 우선 국가가 사라질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는 아나키즘적 논의에 대해선 거리를 두고 있다. 국가, 혹은 얼마간 위계적인 사회시스템은 자치단위 간의 부의 재분배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하비가 적극적으로 어떤 구체적인 제도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이디어 수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두 가지 지점은 우리가 앞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주제를 던져준다:
 
1. 어떤 위계적 제도 속에서도 주민(시민)이 주도적인 주체로 나서서 다양한 수준에서 결정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2. 이 새로운 도시권 운동은 한 도시가 아니라 도시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