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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1장 - 도시에 대한 권리 본문

세미나 발제문/1415 반란의 도시-데이비드 하비

반란의 도시 1장 - 도시에 대한 권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9. 5. 01:52

반란의 도시
1장 - 도시에 대한 권리

2014년 8월 23일
베를린 사회과학모임
박동수

1. 도시권

어릴때 뛰어놀던 놀이터가 주차장이 되어버린걸 알았을때, 또는 추억 속의 뒷골목 맛집을 몇년만에 찾아갔더니 그 일대 전체가 재개발된 걸 깨달았을때. 그때 느끼는 감정이란 쉽게 말로 표현이 안된다. 그리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메트로폴리스 서울 출신이라면, 더욱 낯설지 않은 감정이다. 평생 직장생활 해도 대도시 한귀퉁이에 내집마련 할만한 돈을 모으는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빈집, 빈건물이 그렇게 넘쳐난다는데, 내한몸 있을 공간 한뼘 구하는게 그렇게 어렵다.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걸까. 데이비드 하비의 '반란의 도시'를 읽는 내내 떠올려야 할 질문일것 같다.

도시권이라는 개념은 익숙하게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 '반란의 도시'에서 저자가 언급하는 도시권의 유래는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ere)의 1967년 저서 “도시에 대한 권리”(Le Droit a la Ville)라 할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한 도시권은 “도시 일상생활이 위기에 처하여 맞딱뜨린 실존적 고통에 대한 반응”이었다. 또한 이 위기를 명확히 인식하여 대안적 도시 생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도시권은 개인 각자가 어떤 도시를 원하는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려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단순히 도시의 특정 자원에 접근할 권리를 넘어서서, 도시를 우리가 원하는대로 바꿔나갈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따라서 도시권은 개인적 권리가 아닌 집단적 권리이다. 우리가 누려야 할 가장 중요한 인권들 중의 하나인 셈이다.

2. 자본주의와 도시

자본주의와 도시화는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이다. 본래 잉여생산물이 집적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게 도시이다.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도시 공간에 필요한 잉여생산물을 생산해야만 한다. 또한 그 정반대로, 자본주의가 생산한 잉여생산물을 흡수하려면 도시 공간의 형성이 필수적이다.

자본가는 본질적으로 잉여가치를 지속적으로 재투자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자본가와의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흡수하기 위해 이윤을 확보할 영역을 끊임없이 발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를 탄압하거나 해고하여 비용을 줄이거나, 신규 노동력 또는 신규 생산수단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길을 찾지 못하면 경제 공황이 온다.

그러나 도시를 변화시켜 잉여자본을 흡수하는 과정에는 상상 외로 어두운 측면이 있다. 이른바 '창조적 파괴'를 통해 도시를 재편하는 과정이 뒤따른다. 시민생활을 개선하고 도시 환경을 회복한다는 명분 하에 힘없는 주민들을 쫓아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토지수용권(eminent domain)이라는 수단이 등장하는데, 이는 정부가 사유지를 필요에 따라 몰수할수 있는 권한이다. 합법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물리적 폭력이 난무한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토지 몰수를 통해 노동자 주거지역을 갈라놓고 해체하려는 의도가 드러나기도 한다. 철거된 노동자 주택이 있던 자리에는 점포, 창고, 공공건물이 들어선다. 이미 19세기 파리에서부터 20세기 뉴욕, 오늘날 델리, 서울, 뭄바이에서까지 되풀이되는 풍경이다. 자본주의 도시 형성 과정에는 배제와 약탈이 본질적으로 존재한다.

3. 금융위기와 도시

전세계 금융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만들었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감춰왔던 어두운 측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990년대말 닷컴 버블이 꺼진 후 갈곳을 찾지 못한 유동자산은 부동산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각 대도시 시내와 교외에 빌딩을 지어 대규모 과잉자본을 해소했던 것이다. 게다가 금융혁신을 통해 이른바 '위험 분산'이 가능해져서 파생금융 상품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그럴듯한 부동산 담보대출 조건에 현혹당한 중산층들이 그 상품을 끼고 주택을 구매한다. 그러나 위험이 분산된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붕괴한 것이다. 이때 일차적으로 피해를 입은건 시내에 사는 저소득층과 단독세대주, 그리고 대도시권 주변부에 투기자본이 건설한 분양주택을 구입한 중산층들이었다.

이러한 경제 위기가 도시 저소득층을 희생양으로 삼은 경우를 역사를 통해 다수 발견할수 있다. 1848년 프랑스 파리 나폴레옹 3세 시절에 경제공황이 찾아왔을 때에도, 과잉자본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 기반시설에 투자하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이에 따라 조르주 오스만(Georges Haussmann)이 파리 도시 전체를 뜯어고치는 작업을 주도했다. 도로의 폭, 근린지구와의 연관성 측면에서 당시 도시 형성 과정의 규모 자체를 바꿀 정도의 대규모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 주거지역이 철거당했음은 물론이다. 이후 파리는 소비, 관광, 쾌락의 도시로 변모했지만, 이때 도입한 금융 시스템과 신용구조가 팽창하면서 1868년에 파탄나게 된다. 이때 파리 대개조 사업에서 배제된 이들은 파리를 다시 되찾고 싶어했고, 그 정치적 열망이 1872년 파리 코뮌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1942년 미국 뉴욕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로버트 모제스(Robert Moses)가 주도한 뉴욕 개조 작업에서 그는 도시 뿐만 아니라 대도시권 전체에 고속도로 등의 기반시설을 건설했다. 이러한 형태의 개발은 곧 미국 전역으로 퍼져갔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잉자본을 해소하는 역할을 적절히 수행했다. 그러나 교외화는 곧 도심 공동화로 이어졌고, 도심에는 빈민과 소수자들만 몰려들었다. 이들이 모제스의 야만적 도시개발에 반대하는 운동 세력이 되기도 했고, 1968년을 전후하여 진행된 여러 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1975년 뉴욕시는 재정 파탄을 맞았고, 국가기관과 금융기관은 불안정한 동맹을 맺어가면서 노동자 계급을 희생시키고 자본가의 권력을 지키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오늘날, 경제위기가 어떻게 해결될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구적 차원의 불균등 발전을 이용해 전면적인 글로벌 공황을 모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긴밀히 연관된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므로, 언제 어디서 뇌관이 터질지 모르는 형편이다. 도시 공간 형성과 관련해 금융자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4. 대안과 정치적 해법

신자유주의가 수십년동안 세상을 휩쓴 결과, 1%도 안되는 엘리트들이 계급권력을 찾았다. 이렇듯 양극화된 결과는 도시의 공간 형태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도시는 여러 부분으로 나뉘고 그 각각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와 같이 작동한다. 한 지역에서는 부유한 상류층들이 사설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모여사는가 하면, 바로 옆동네에는 기본적 공중위생 시설도 없는 불법 거주지역이 있다. 도시의 정체성, 시민권, 일관된 도시 정치 같은 이념은 애초에 유지되기 힘들다 하더라도, 도시가 진보적 사회운동이 발생하는 장소가 될수 있긴 한걸까? 대안은 무엇일까?

금융시스템이 더욱 글로벌화, 통합화하고 있다는 점을 비춰볼때, 우리 시대의 정치적 해법은 한층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도시 형성은 온갖 종류의 균열, 불안정, 지리적 불균등 발전으로 뒤덮여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반란의 조짐은 어디에나 있다. 중국, 인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미국 등 크고 작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는 중이다. 그러나 전세계의 도시 주변부의 대항적 사회운동 세력들은 서로간에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 만약 이들이 연합하여 단일한 목소리를 낼수만 있다면, 반드시 “잉여의 생산과 이용의 민주적 관리”를 주장해야 한다.

잉여자본을 관리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국가가 걷는 세금이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린 결과, 잉여 관리는 거의 민간에게 넘어갔다. 심지어 국가 이익과 기업 이익이 통합되는 현상도 발생하고, 도시권 역시 사적 이익집단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있다. 이런 경향이 더욱 심화되는걸 막기 위해서 전세계 시민들의 감시가 필요하다. 부의 축적을 지향하는 경제가 약탈 위주의 경제에 폭력적으로 올라탈때 빚어지는 창조적 파괴의 순간을 예리하게 주시해야 한다.